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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Runway & Trend

AMIRI 27SS, 할리우드의 노스탤지어

by 초예민 2026. 7. 15.

패션위크를 보다 보면 어떤 쇼는 옷보다 하나의 장면이 먼저 떠오른다.

AMIRI의 27SS 컬렉션이 그랬다.

쇼를 보는 내내 떠오른 것은 오래된 할리우드 영화였다.

노을이 지는 로스앤젤레스, 클래식한 호텔 바, 그리고 셔츠 단추를 몇 개쯤 자연스럽게 풀어 입은 남자의 모습.

이번 시즌의 AMIRI는 이전보다 훨씬 조용했다.

그렇다고 브랜드의 개성이 약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동안 AMIRI가 꾸준히 이야기해 온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를 조금 더 깊고 성숙한 방식으로 풀어낸 시즌처럼 느껴졌다.


패션 디테일의 특징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테일러링이었다.

이전 시즌에도 재킷은 꾸준히 등장했지만, 이번에는 컬렉션 전체를 이끄는 중심축처럼 보였다.

어깨는 자연스럽게 떨어지고, 허리는 과하게 조이지 않는다. 팬츠는 길게 흐르며 실루엣을 정리하고, 셔츠는 단추를 깊게 풀어 긴장감을 덜어낸다.

슈트를 입었지만 딱딱하지 않고, 클래식하지만 형식적이지도 않다.

AMIRI 특유의 여유로운 분위기가 테일러링 안에서도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소재를 사용하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실크와 리넨, 자카드와 은은한 자수는 존재감을 드러내기보다 컬렉션의 분위기를 만드는 역할을 한다. 예전처럼 크리스털 장식이나 강한 디스트로이드 디테일이 먼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원단 자체가 가진 깊이와 질감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물론 데님은 여전히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이번 시즌의 데님은 컬렉션을 이끄는 주인공이라기보다, 테일러링을 더욱 자연스럽게 만들어 주는 하나의 요소처럼 느껴졌다.


전반적인 컬렉션의 특징

이번 시즌을 보며 가장 크게 느낀 것은 AMIRI가 조금 더 ‘영화적’인 브랜드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전까지의 AMIRI는 락스타와 로스앤젤레스의 자유로운 에너지가 강하게 느껴졌다.

반면 이번 시즌은 에너지보다 분위기에 집중한다.

화려하게 시선을 끌기보다, 한 장면을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특히 이번 컬렉션은 디자이너 Mike Amiri가 영감의 출발점으로 언급한 영화 American Gigolo의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있었다.

하지만 영화를 그대로 재현하려는 느낌은 아니다.

오래된 할리우드가 가진 여유와 우아함을 지금의 감각으로 다시 풀어낸 듯했다.

쇼를 보다 보니 문득 Dries Van Noten이 떠오르기도 했다.

화려한 장식보다 소재와 컬러, 그리고 스타일링으로 감정을 전달하는 방식이 비슷하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둘이 만들어내는 분위기는 분명 다르다.

Dries Van Noten이 여행의 기억과 예술적인 감성을 이야기한다면, 이번 AMIRI는 로스앤젤레스라는 도시가 가진 영화 같은 낭만을 이야기한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을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할리우드의 노스탤지어’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린다.


컬러 팔레트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요소 중 하나는 컬러였다.

강렬한 원색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크림, 아이보리, 토바코 브라운, 올리브, 버건디, 더스티 핑크처럼 채도를 낮춘 색들이 컬렉션 전체를 부드럽게 이어준다.

특히 서로 다른 컬러를 충돌시키기보다 자연스럽게 연결하는 방식이 인상적이었다.

크림 재킷에 브라운 팬츠, 올리브 셔츠에 아이보리 슬랙스를 매치하는 식의 스타일링은 화려하지 않지만 오래 바라보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AMIRI를 생각하면 강렬한 블랙과 데님이 먼저 떠오르곤 했는데, 이번 시즌은 훨씬 따뜻하고 부드러운 컬러 팔레트가 중심을 잡고 있었다.

덕분에 컬렉션 전체가 해 질 무렵의 로스앤젤레스를 닮았다는 인상을 받았다.


 

해외 패션 매체들도 이번 컬렉션에서 공통적으로 주목한 부분은 이전보다 깊어진 테일러링과 영화적인 무드였다.

브랜드의 뿌리인 로스앤젤레스는 그대로 유지하면서도, 이를 훨씬 절제되고 세련된 방식으로 풀어냈다는 평가가 이어졌다.

나 역시 같은 부분이 가장 인상 깊었다.

이번 시즌은 AMIRI가 완전히 새로운 브랜드가 되었다기보다, 그동안 조금씩 이어오던 변화를 가장 안정적으로 완성한 컬렉션처럼 느껴졌다.

브랜드를 대표하는 데님도, 웨스턴 무드도 여전히 남아 있다.

다만 그것들이 이제는 컬렉션의 전부가 아니라, 하나의 분위기를 구성하는 요소가 되었다는 점이 흥미롭다.

패션은 종종 더 강한 디테일과 더 새로운 디자인으로 변화를 이야기한다.

하지만 이번 AMIRI는 조금 다른 방식이었다.

큰 변화를 만들기보다 브랜드가 가장 잘하는 것을 조금 더 정교하게 다듬었다.

그래서 27SS 컬렉션은 화려하게 기억되기보다 오래 남는다.

이번 시즌의 AMIRI는 로스앤젤레스를 보여준 것이 아니라, 오래된 할리우드를 떠올리게 했다. 그리고 그 노스탤지어가 이번 컬렉션을 더욱 깊게 만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