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디자이너 브랜드를 이야기할 때 흔히 떠오르는 이름들이 있다.
꼼 데 가르송, 언더커버, 사카이, 이세이 미야케.
그리고 패션 업계에서는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브랜드가 하나 더 있다.
바로 Kolor(컬러)다.
흥미로운 점은 Kolor가 생각보다 대중적인 브랜드는 아니라는 것이다.
대표적인 로고 플레이도 없고, 특정 시그니처 제품 하나로 유명해진 브랜드도 아니다.
하지만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 패션 업계 종사자들 사이에서는 오랫동안 높은 평가를 받아왔다.
그 이유는 단순하다.
Kolor는 옷을 굉장히 잘 만드는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Kolor는 2004년 일본 디자이너 아베 준이치(Junichi Abe)가 설립했다.
아베 준이치는 일본 패션 명문인 문화복장학원을 졸업한 뒤, 꼼 데 가르송 산하의 Junya Watanabe 팀에서 경험을 쌓았다.
이 시기의 경험은 훗날 Kolor의 디자인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다.
실험적인 요소를 활용하면서도 실제로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드는 것.
복잡한 구조를 사용하지만 결과물은 자연스럽게 보이도록 만드는 것.
이러한 특징은 지금도 Kolor를 대표하는 디자인 언어로 남아 있다.
실제로 아베 준이치는 오랫동안 일본 패션계에서 “디자이너들이 존경하는 디자이너” 중 한 명으로 평가받아 왔다.
화려한 마케팅보다 옷 자체의 완성도에 집중했고, 그 결과 Kolor는 패션 업계 관계자들에게 꾸준한 신뢰를 얻었다.
브랜드 이름은 의외로 단순하다.
‘Color’가 아닌 ‘Kolor’.
철자를 바꾼 이유는 기존의 색(color)이라는 개념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기 위해서였다.
실제로 Kolor는 단순히 색을 강조하는 브랜드가 아니다.
원단, 패턴, 실루엣, 디테일 등 다양한 요소를 조합해 새로운 균형을 만드는 것이 브랜드의 핵심이다.
그래서 컬렉션을 보다 보면 화려하지 않은데도 독특하고, 복잡한데도 자연스러운 느낌을 받게 된다.
평범한 옷을 다르게 만드는 능력
Kolor의 가장 큰 특징은 익숙한 옷을 새롭게 만드는 데 있다.
블레이저.
후디.
니트.
코트.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이템들이다.
하지만 Kolor의 옷은 자세히 보면 조금씩 다르다.
서로 다른 소재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거나, 절개선이 예상과 다른 위치에 있거나, 안감의 일부를 디자인 요소처럼 활용하기도 한다.
그런데도 과하지 않다.
그래서 Kolor의 옷은 독특하지만 부담스럽지 않다.
왜 레이어링이 유명할까
Kolor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것이 레이어링이다.
많은 브랜드들이 여러 옷을 겹쳐 입는 스타일링을 보여주지만 실제로 따라 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반면 Kolor의 레이어링은 현실적이다.
셔츠와 니트, 재킷과 코트처럼 누구나 입을 수 있는 조합을 활용한다.
대신 옷 자체가 레이어링을 고려해 설계되어 있다.
그래서 복잡해 보이는 스타일링도 실제로 입어 보면 생각보다 자연스럽다.
Kolor를 오래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옷을 잘 만드는 브랜드”라는 평가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패턴이 좋은 브랜드
Kolor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종종 “패턴이 좋다”는 이야기를 한다.
여기서 말하는 패턴은 옷의 무늬가 아니라 옷을 만드는 설계도를 의미한다.
Kolor는 어깨선, 소매, 허리선 같은 부분을 매우 세심하게 설계한다.
그래서 입었을 때 실루엣이 자연스럽고 편안하다.
실제로 많은 바이어와 스타일리스트들이 Kolor를 높게 평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눈에 띄는 로고나 그래픽 없이도 옷 자체로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이다.
Sacai와 자주 비교되는 이유
일본 패션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Kolor와 Sacai를 함께 언급하는 경우가 많다.
둘 다 레이어링과 소재 믹스를 잘 활용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위기는 꽤 다르다.
Sacai가 해체주의와 하이브리드 디자인에 집중한다면,
Kolor는 보다 절제된 방식으로 변화를 만든다.
그래서 Sacai가 조금 더 강한 개성을 드러낸다면, Kolor는 일상 속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쪽에 가깝다.
2025 FW, 아베 준이치의 마지막 쇼

2025 FW 컬렉션은 Kolor 역사에서 중요한 시즌으로 남게 됐다.
아베 준이치가 직접 이끄는 마지막 컬렉션이었기 때문이다.
쇼 시작 전 공개된 편지를 통해 그는 이번 시즌을 끝으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자리에서 물러난다고 발표했다.
2004년 브랜드 창립 이후 약 20년 동안 Kolor를 이끌어 온 디자이너의 마지막 무대였다.
당시 컬렉션은 단순한 시즌 발표가 아니라 지난 20년 동안 Kolor가 보여준 디자인 철학을 정리하는 무대처럼 받아들여졌다.
소재 믹스, 레이어링, 정교한 테일러링 등 아베 준이치를 대표하는 요소들이 모두 담겨 있었고, 많은 패션 관계자들은 이를 “가장 Kolor다운 컬렉션 중 하나”라고 평가했다.
새로운 시대의 시작, 2026 SS
2025 FW가 한 시대의 마무리였다면, 2026 SS는 새로운 시작이었다.
후임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선임된 인물은 타로 호리우치(Taro Horiuchi)다.
벨기에 앤트워프 왕립예술학교 출신인 그는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를 운영하며 꾸준히 활동해 온 디자이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사는 하나였다.
“아베 준이치 이후의 Kolor는 어떤 모습일까?”
결과적으로 첫 시즌은 예상보다 훨씬 Kolor다웠다.
브랜드의 핵심이었던 소재 활용과 레이어링, 기능성과 테일러링의 조합은 그대로 유지됐다.
다만 분위기는 조금 달라졌다.
전체적으로 더 가볍고 편안해졌고, 유머러스한 디테일도 늘어났다.
실크 캐미솔과 기능성 포켓을 결합하거나, 재킷 안감을 의도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이 대표적이다.
2026 SS 컬렉션에 대한 반응은 전반적으로 긍정적이었다.
특히 많은 평론가들은 “Kolor를 무리하게 바꾸지 않았다”는 점을 높게 평가했다.
새로운 디렉터가 부임하면 브랜드를 완전히 뒤집으려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하지만 타로 호리우치는 반대의 선택을 했다.
브랜드의 DNA를 유지하면서도 조금 더 가볍고 현대적인 감각을 더했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은 혁신이라기보다 진화에 가까운 시즌으로 평가받았다.
Kolor는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브랜드는 아니다.
하지만 옷을 좋아하는 사람일수록 높게 평가하는 브랜드다.
화려한 로고도 없고, 과한 마케팅도 하지 않는다.
대신 원단과 패턴, 그리고 완성도로 승부한다.
그래서 Kolor는 유행을 크게 타지 않는다.
몇 년이 지나도 여전히 좋아 보이는 옷을 만드는 브랜드에 가깝다.
2025 FW는 아베 준이치 시대의 마지막 장면이었다.
그리고 2026 SS는 새로운 Kolor의 첫 페이지였다.
브랜드의 창립자가 떠난 이후에도 Kolor는 자신만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
앞으로 타로 호리우치가 어떤 방식으로 브랜드를 발전시켜 나갈지는 아직 알 수 없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아베 준이치가 만든 Kolor가 현대 일본 패션을 대표하는 브랜드 중 하나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는 그 다음 이야기가 시작되는 순간을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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