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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Runway & Trend

작열하는 더위 속의 Rick Owens 27SS

by 초예민 2026. 7. 20.

매 시즌 Rick Owens의 런웨이에는 강렬한 장면이 등장한다.

이번에는 파리 팔레 드 도쿄(Palais de Tokyo)의 분수였다.

유럽을 덮친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 Rick Owens는 쇼 시간을 오전으로 앞당겼고, 관객에게는 우산과 얼음물을 나눠줬다. 모델들은 분수 위에 설치된 금속 런웨이를 걸었고, 물줄기는 런웨이 양옆으로 끊임없이 솟아올랐다. 쇼의 마지막에는 분수에서 튄 물이 라텍스와 가죽 위를 타고 흘러내리며 컬렉션의 분위기를 완성했다.  

단순한 연출처럼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번 컬렉션은 처음부터 끝까지 ‘극한의 환경에서 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중심에 두고 있었다.


몸을 감싸는 옷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는 구조

Rick Owens는 이번 시즌 컬렉션을 설명하며 ‘텐세그리티(Tensegrity)’라는 개념을 언급했다.

건축가이자 발명가인 Buckminster Fuller가 사용한 용어로, 압축과 장력이 서로 균형을 이루며 구조를 유지하는 시스템을 뜻한다.

Owens는 이것을 인간의 몸과 정신에 연결했다.

“우리는 긴장으로 이루어진 구조물이다. 그 긴장이 우리를 붙잡아 준다.”

이 개념은 옷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폼과 라텍스로 제작한 외골격 형태의 챕스(chaps), 과장된 어깨, 몸을 단단히 감싸는 라텍스 톱과 구조적인 실루엣은 장식이라기보다 몸을 지탱하는 프레임처럼 보였다.

Rick Owens 특유의 과장된 실루엣도 이번 시즌에는 조형적인 실험보다 신체를 둘러싼 긴장감을 표현하는 장치에 가까웠다.


스포츠웨어가 가장 현실적인 옷이 되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큰 화제는 adidas와의 재협업이었다.

Rick Owens와 adidas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독창적인 풋웨어를 선보이며 큰 반향을 일으켰고, 이번 시즌 약 10년 만에 다시 손을 잡았다.  

흥미로운 점은 협업의 방향이다.

단순히 러닝화를 만드는 데 그치지 않았다.

컬렉션에는 Climacool 기술을 적용한 재킷과 쇼츠가 등장했다. 내부 팬이 공기를 순환시키며 의복 안의 열을 식히는 구조로, 일본의 혹서기 작업복에서 영감을 받은 냉각 시스템을 adidas 기술과 결합한 것이다.  

부풀어 오른 실루엣은 처음에는 다소 과장돼 보인다.

하지만 유럽 전역이 폭염을 겪고 있던 시점에서 이 옷은 단순한 미래적 디자인이 아니라, 더운 환경에서 실제로 착용할 수 있는 기능성 의복이라는 현실적인 의미를 갖는다.

Rick Owens가 늘 보여주던 미래적 이미지는 이번 시즌 처음으로 ‘기술’과 직접 연결됐다.


Rick Owens답지만, 조금은 달라진 컬러와 소재

컬러 팔레트는 여전히 Rick Owens다.

블랙을 중심으로 화이트, 더스트, 누드 톤이 이어지고, 가죽과 라텍스, 실크 크레이프, 재생 나일론 등 브랜드를 대표하는 소재들이 반복된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소재의 역할이 조금 달라졌다.

라텍스는 물을 머금으며 표면의 질감을 더욱 강조했고, 얇은 저지와 기능성 소재는 무거운 분위기보다 움직임과 통기성을 드러냈다.

특히 런웨이의 물과 햇빛이 만들어낸 반사는 블랙 컬러를 더 선명하게 보여주며, Rick Owens 특유의 어두운 색감에도 예상 밖의 생동감을 더했다.


Must Buy Item

런웨이에는 현실적으로 착용하기 어려운 룩도 많지만, 그 안에는 컬렉션을 가장 잘 보여주는 아이템이 있다.

27SS Rick Owens에서는 단연 adidas와 협업한 Climacool 재킷을 꼽고 싶다.

이번 협업은 단순히 로고를 공유한 캡슐 컬렉션이 아니라, adidas의 냉각 기술인 Climacool을 Rick Owens의 디자인 언어와 결합한 프로젝트다. 재킷 내부에는 공기를 순환시키는 팬 시스템이 적용돼 더운 환경에서도 체온을 낮추는 기능을 갖췄고, 부풀어 오른 실루엣 역시 이 구조를 자연스럽게 감싸기 위한 결과물이다.

Rick Owens는 오랫동안 미래적인 형태와 조형적인 실루엣을 선보여 왔다. 하지만 이번 시즌에는 그 미래성이 단순한 디자인에 머물지 않았다. 기술을 통해 실제 환경에 대응하는 기능까지 더해지면서, 컬렉션의 핵심 메시지를 가장 직접적으로 담아낸 아이템이 됐다.

물론 컬렉터의 관점에서는 텐세그리티 구조를 적용한 챕스나 라텍스 피스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하지만 27SS Rick Owens를 대표하는 한 벌을 고른다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이 Climacool 재킷일 것이다.

 

가장 오래 남은 것은 ‘생존’

Rick Owens는 늘 미래적인 디자이너로 불린다.

그래서 그의 컬렉션은 종종 디스토피아나 공상과학 영화의 의상처럼 해석된다.

하지만 이번 쇼를 보고 가장 먼저 떠오른 단어는 미래가 아니라 생존이었다.

극심한 폭염 속에서 쇼 시간을 조정하고, 물을 활용한 런웨이를 만들고, 공기를 순환시키는 의복을 선보인 이유는 단순히 화제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지금 우리가 마주한 환경에서 몸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패션이라는 방식으로 질문한 것이다.

Rick Owens는 이번 시즌에도 여전히 과감했고 실험적이었다.

다만 그 실험은 이전처럼 먼 미래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시작된 현실에 대한 대응에 더 가까워 보였다.

그래서 이번 컬렉션은 화려한 볼거리보다도, 패션이 기후 변화와 기술, 그리고 인간의 몸을 어떻게 연결할 수 있는지 보여준 하나의 사례로 오래 기억될 것 같다.

 

 

 

이번 컬렉션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것은 adidas Climacool 협업보다도 텐세그리티라는 개념을 옷으로 풀어낸 방식이었다.

Rick Owens는 늘 강한 실루엣을 보여줬지만, 이번 시즌의 구조는 단순히 과장된 디자인이 아니라 긴장과 균형으로 유지되는 인간의 몸을 시각화하는 데 더 가까웠다.

그래서 27SS 컬렉션은 ‘검은 옷을 잘 만드는 디자이너’라는 Rick Owens의 이미지를 넘어, 현실의 환경 변화에 가장 적극적으로 반응한 런웨이로 기억될 만한 시즌이었다.